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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계룡산 3사4봉 종주 완주를 하다

by 샘 터 2018. 10. 26.










초가을 2 - 김용택



산 아래

동네가 참 좋습니다


벼 익은 논에 해 지는 모습도 그렇고

강가에 풀색도 참 곱습니다


나는 지금 해가 지는 초가을

소슬바람 부는 산 아래 서 있답니다


산 아래에서 산 보며

두 손 편하게 내려놓으니

맘이 이리 소슬하네요


초가을에는 지는 햇살들이 발광하는 서쪽이

좋습니다






 

 


*코스 : 병사골 공원 지킴터~장군봉~큰배재~남매탑~금잔디고개~용문폭포~갑사~연천봉~신원사

             ~연천봉고개~관음봉~삼불봉~남매탑~동학사~동학사 매표소 

 




지난 일욜 울 초딩 동창 산악회서 계룡산을 다녀갔다


그 날 이쁜단풍을 보고

오늘쯤 가면

더 성숙해지고 진해진 단풍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울 친구들 흔적도 줍고

날씨도 좋아


4년전 완주 했었던 3사4봉이란 것도

다시 해 보고 싶고하여


짧지만은 않은 거리이기에

무리하지 않고 가는데까지 걸어 보기로 하고


이른 아침 시내버스에

몸을 싣고 박정자 삼거리에서 내려 시작을 한다





 


 상쾌함을 주는 아침공기도

송글송글 이쁜 이슬도

다시 도전하는 나에게 응원 해 준다













입구에서

산길샘도 작동 시키고

간단히 준비를~


천천히 걷는다








그 동안 안온 사이 계단이 놓여졌다


















운해가 보인다








계단이 놓여 완전 탈바꿈한 길이 되어 있다













오우!!~~

이쪽에도 운해가...













나뭇 사이사이로 햇빛이 찬란하게 스며든다








이런 느낌

무엇으로 표현하리까


너무

   좋다는 말밖엔...























운해가 가득가득....

또 다른 풍경으로 복 받은 날인것 같다


















하신리와 상신리


조용한 마을을

아침햇살이 평온하게 깨운다








계룡산 3사 4봉중에 제 1봉


가능한 볼 수 있는 것은 다 본다
























단풍이 참 곱다








여기에도 계단이...

편리하게  많이도 해 놓았다


















다시

꼭 해 보고 싶었던 3사4봉 종주


이 이쁜계절에

 도전하길 잘 했다는 것을~


그런데

이렇게 이쁜 단풍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음에

시간은 더 걸릴 것임은

분명하여

그냥 보이는대로 느끼고 담기로 한다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 가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ㅎ


















철 지난 진달래 한송이가 반갑다








이쁘게 물든 가로수도 당겨 보고








정상쪽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만산홍엽이로다...!!!!!




























이곳을 내려올때나 오를때 엄청 힘들었는데

   이젠 수월하게....













색이 참으로 고운 잎들

눈을 뗄 수가 없다


맘껏 보면서 즐기자























구절초























이 코스를 탈때면 이 바위에 앉아 휴식도

간식도 먹고 했었는데

오늘은 갈길이 멀어 올려다 보기만 하고 패스한다


















옹기종기 보기 좋은 하신리와








상신리








오늘때마다 쉼을 하는 곳의 멋진 소나무도 당겨 본다













삼불봉 능선도 보이고






































혼자보기 너무 아깝다


계속

아~~!!

이쁘다

좋다를

 나도 모르게 외친다























천정골에도 만산홍엽이로다...!!!























참싸리 나뭇잎이 황금이 되었다

































이 계단을 내려가면 큰배재이다








일욜 왔을때는 물들지 않았는데

우아한 선물을 안겨 준다


















큰배재








뒤돌아 본 큰배재

































여전히 이쁜 잎새들








남매탑으로 가는길


울 초딩 동창들의 시끌벅적했던 시간들을 줍는다


































남매탑의 정식명칭은 청량사지 칠층석탑 [淸凉寺址七層石塔] 이다

 

 보물 제1284호 고려시대


**


옛날 이 곳에 한 스님이 기도하던 작은 암자가 있었다


하루는 한밤중에 범이 찾아와 으르렁거렸다고 한다

. 스님이 자세히 보니 범의 목에 비녀가 걸려 있어서

스님이 범의 목구멍에 손을 넣어 걸려 있는 비녀를 빼주었다고 한다

그러자 범은 이내 사라졌다

그 이튿날 범이 다시 나타나 스님을 등에 태우고 산 속으로 들어가

범이 숲 속에 스님을 내려놓는데 그 곳에는 기절한 여인이 누워 있었다고 한다


스님은 여자를 암자에 데리고 와 치료를 해 주었으며

 깨어난 여인이, “혼인을 하루 앞두고 뒷간에 갔다가 잡혀왔다.”고 하자,

스님은, “날이 밝으면 서둘러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여인은 범에게 잡혀온 자신이 죽지 않고

암자에 머물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더군다나 스님과의 인연은 부처님이 만들어준 인연인 것 같았다고 하여

 스님이 귀향할 것을 권해도 끝내 가지 않고

“스님과 함께 불도를 닦겠다.”고 결심하였다고 한다


결국 두 사람은

오뉘의 연을 맺고 일생을 더불어 이 암자에서 수행 하였으며

 뒷날 사람들은 이 두 오뉘의 인연을 기려 탑을 세우고


탑의 이름을

남매탑 또는 오뉘탑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비목나뭇잎이 화려하게 빛을 발한다











































삼불봉 고개가 코앞이다


이 오름길은 언제나 힘들다








삼불봉고개


갑사방향으로 내려선다













계룡산 오르는 코스는 거의가 돌길이다


그래서

더 힘든것 같으다








금잔디고개























역시나 이 곳에도 다양한 색을 보여 준다























신흥암


















와~~!!!!

너무 너무 이쁜 사람주나무 단풍


나무껍질이 사람의 피부처럼 희고 매끄럽다고 하여 사람주나무라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용문폭포


**


충청남도 공주시의 계룡면 중장리에 있는 폭포이며

용문폭(龍門瀑)이라고 전한다


예로부터 갑사구곡의 하나로 유명하고

갑사구곡은 용유소, 이일천, 백룡강, 달문담, 군자대, 명월담, 계룡오암, 용문폭포 및 수정봉을 말한다


구곡은 갑사로 오르는 계곡 일대를 지칭하는데

추갑사(秋甲寺)라고 불릴 만큼 가을이면 단풍으로 붉게 물들고

여름에는 우거진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서늘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용문 지명은 중국 황하(黃河) 중류에 있는 여울목으로서

 이무기가 이곳을 뛰어오르면 용이 된다고 전해지는 용문(龍門)과 닮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계룡산 연천봉 북서쪽 골짜기의 물이 합하여

미륵불 위쪽 골짜기에서 폭포를 이루고


이 폭포는 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기 때문에

기우제나 산신제 등의 무속행사가 자주 열린다고 한다 


이 폭포가 있는 계룡면 중장리(中壯里)는

계룡산 끝자락에 자리 잡은 전형적인 산촌 마을이다


 마을 중앙에 이 폭포가 흐르고 있으며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낮아지는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 마을로는 중장, 갑골, 갑사동 등이 있고

 중장은 대장골의 중앙에 있어 붙여진 지명이며

갑골은 유산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한다

 

갑사동은 삼거리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갑사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






























갑사 [甲寺]

 

계룡산 3사 4봉종주중에 제 1사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계룡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계룡갑사(鷄龍甲寺)·갑사(岬寺)·갑사사(甲士寺)·계룡사(鷄龍寺)라고도 하며

420년에 아도(阿道)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556년(진흥왕 17)에 혜명(惠明)이 창건하였다는 설

아도가 창건하고 혜명이 중창했다는 설 등이 있다


 또한, 503년(무령왕 4)에 천불전(千佛殿)을 신축하였다는 설도 있고

679년(문무왕 9)에는 의상(義湘)이 중수 하였으며

 ‘화엄대학지소(華嚴大學之所)’로 삼아

 이 때부터 신라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그 뒤 859년과 887년에 중창하였다


. 1424년(세종 6) 4월 나라에서 사원의 승려 수와 토지의 규모를 정할 때

예조에서 ‘충청도 공주 계룡사는 원래 100결의 토지가 있었지만

이제 50결을 더해서 70명의 승려를 거주토록 할 것.’을 건의해서 결정 되었다


1583년(선조 16) 여름에는

정문루(正門樓)를 중수하였고

 1584년 여름에는 철 8,000근으로 대종(大鐘)을 주조했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건물이 모두 불타버린 뒤에

대웅전과 진해당(振海堂)을 중건하였다


1654년(효종 5)에는

사정(思淨)·신휘(愼徽)·경환(瓊環)·일행(一行)·정화(正華)·상균(尙均)·행준(行俊) 등의 승려가

관찰사 강백년(姜栢年)의 도움을 얻어 크게 중창하였다


같은 해 여주목사 이지천(李志賤)이 지은

 계룡산 갑사사적비명을 건립하였고


1738년(영조 14) 표충원(表忠院)을 세웠으며

1797년에 원선사(圓禪師)가 중창하였고

 1875년에 중수를 거쳐 1899년에는 적묵당(寂默堂)을 신축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강당·대적전(大寂殿)·응향각·진해당·적묵당·팔상전·팔상문·장경각(藏經閣)·표충원·삼성각·종각·요사채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256호인 갑사철당간 및 지주와

 보물 제257호인 갑사부도, 보물 제478호인 갑사동종, 보물 제582호인 선조 2년간 월인석보판본이 있다


 지방문화재로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5호인 강당이 있고

대웅전은 제105호, 대적전은 제106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 안의 석조약사여래입상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0호로

석조보살입상은 제51호로, 갑사사적비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충청남도 기념물 제15호인 영규대사묘가 있다


표충원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2호,

삼성각은 제53호, 팔상전은 제5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5호인

갑사중사자암지삼층석탑, 제56호인 영규대사비, 제68호인 천진보탑(天眞寶塔) 등이 지정되어 있다


또한, 강당에는 절도사 홍재의(洪在義)가 쓴 계룡갑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표충원에는 휴정(休靜)·유정(惟政)·기허(騎虛)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이 중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의 부도는 갑사 뒤편의 산속에 있었으며

상륜부까지 갖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오다가


 1917년에 도괴된 뒤 대적전 앞으로 옮겼고

 1583년에 주조된 동종은 민족항일기에 쇠 공출로 제공되었다가

8·15광복 후 인천에서 다시 찾아온 것이다


부속암자로 1808년에 청담(淸潭)이 세운 내원암(內院庵)

수정봉 아래의 신흥암(新興庵)·대성암(大聖庵)·대적암(大寂庵)·대자암(大慈庵) 등이 있다























갑사를 살짝 둘러보고 연천봉으로~~~























  아~

힘들다

다리가 천근만근


쉼을 하면서 걷는다


이  계단을 올라가면 연천봉 고개이다








여기에도 새로 생긴 계단













연천봉

 

계룡산 3사4봉 종주중에 제 2봉

 


















연천봉에서 시원하게 조망을 하고

간식과 커피를 마신다








계룡시 향적산 능선도 보이고








이런 풍경에 한없이 취하고 싶지만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어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등운암








보광암 방향으로~








연애골 능선













계룡산 정상과 머리봉


















가을~~

가을이라서 더 좋은 길이다













연분홍빛 구절초













계룡산 중악단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신원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계룡산 산신에게 제사하던 제향 건축물

1879년(고종 16) 중수한 건축한 건물이지만

계룡산신에 대한 제사 공간으로서의 역사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계룡산신라의 제사 규정에서 중사(中祀)에 속하며

신라 5악 신앙에 의한 국가적 제사의 전통이 후대로 계승된 것이다


 15세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서는

 계룡산 제사와 관련하여 신원사와 동일한 위상으로 계룡산사(鷄龍山祠)를 언급하고 있다


 또한 18세기의 「계룡당기(鷄龍堂記)」라는

제사 자료와 1859년에 편찬된 『공산지』의 기록으로 보아

중악단은 ‘계룡산사계룡당계룡단’의 계승인 셈이다


중악단이 있는 신원사의 기원은 계룡산신에 대한 제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중악단은 대문간채, 중문채, 본전이 일직선 서남향으로 배치되어 있고

, 주위는 담으로 둘러져 있다


대문과 중문 사이에 앞마당이 있고

본전(중악단) 앞에 중정(中庭)이 조성되어 있다


또한 중문채와 본전 사이에

돌과 벽돌을 깔아 신도(神道)를 조성하였다


 중악단의 본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평면적 46㎡)이며


 계룡산신을 모시는 제단으로서

 다포 팔작집의 화려한 공포 구성을 통해 건물의 위엄을 자랑하고 있다

내부에 계룡산신의 신위와 영정을 모셨다

5악, 혹은 3악으로

 의 대표적 산악 신앙의 대상이었던 계룡산신에 대한

 고대 이래의 제사처라는 데 큰 의미가 있으며

 조선 말기 궁궐 건축에 준하는 종교 건축물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한다


















신원사 [ 新元寺 ]

 

계룡산 3사4봉 종주중에 제 2사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계룡산(鷄龍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651년(의자왕 11)에 열반종(涅槃宗)의 개산조 보덕(普德)이 창건하였으며

신라 말에 도선(道詵)이 이곳을 지나다가 법당만 남아 있던 절을 중창하였고

 1298년(충렬왕 24)에는 무기(無寄)가 중건하였다


조선 후기에 무학(無學)이 중창하면서 영원전(靈源殿)을 지었고

1866년(고종 3)에 관찰사 심상훈(沈相薰)이 중수하면서 신원사라 하였으며

 1876년에 보연(普延)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계룡산 동서남북 4대 사찰 중 남사(南寺)에 속하며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향각(香閣)·영원전·대방(大方)·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8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중건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八作)집이며

 내부에는 아미타불이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다


또 향각의 불상은 명성황후가 봉안한 것이라고 전하며

문화재로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1호인 오층석탑과 부도가 있다


오층석탑은 여래사리탑(如來舍利塔)으로 신라 말 고려 초의 양식을 띠고 있으며

 상층 일부가 없어지고 4층만 남아 있다


. 1975년의 보수공사 때 1층 탑신의 사리공(舍利孔)에서

 사리구(舍利具)와 함께 개원통보(開元通寶)·함원평보(咸元平寶)·황송통보(皇宋通寶)가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모두가 고려시대의 것이다


이 밖에도 대웅전에서 동쪽 약 50m 거리에는

 이 절에서 관리하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7호인 계룡산 중악단(中嶽壇)이 있다


 본래는 계룡산의 산신제단(山神祭壇), 즉 계룡단이었던 것이

조선 말 고종 때 묘향산에 상악단(上嶽壇), 지리산에 하악단(下嶽壇)을 두고 있었으므로

중악단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신라 때는 중사례(中祀禮)로 제사를 지냈고

조선시대에는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제사를 지냈으나

 현재에는 향전(香奠:초상집에 부조로 내는 돈이나 물품)을 올릴 뿐이다


현재의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多包) 팔작집으로 조선 말기 건축 중 우수한 것이라고 하며

 우리 나라 산악신앙의 제단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중악단의 경역은 612㎡로 둘레에 축담을 둘렀고 전면에 이중의 내외문(內外門)이 있다


부속 암자로는 고왕암(古王庵)·등운암(騰雲庵)·마명암(馬鳴庵)·남암(南庵) 등이 있고

이 가운데 고왕암은 660년(의자왕 21)에 창건하였고

 1419년(세종 1)에 중건하였으며

 1928년 청운(淸雲)이 또 다시 중건하였다고 한다

 

암자의 이름을 고왕이라고 한 것은

 당나라의 소정방(蘇定方)이 신라의 장군 김유신(金庾信)과 합세하여

 백제를 침공할 때 백제의 왕자 융(隆)이 피난 했다가

이곳에서 신라군에게 항복함으로써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하고 있다

 


























































신원사를 뒤로 하고 연천봉 고개로 향한다




























이쁜단풍과 함께함은 좋은데

오르는 길은

힘들고도

힘들다
















































신원사에서 연천봉고개로 오르는 것이

내 개인으론

힘든것 같다


몇발짝 옮기고 쉬고

몇발짝 옮기고 쉬고


그렇게 발품을 팔아

 연천봉고개 가까운 계단에 도착이다








   연천봉고개에서 관음봉고개쪽으로~~


이쁜 단풍으로 힘듬을 잠시 잊는다








가다가

살짝 비켜난 길로 올라 관음봉에 도착이다








계룡산 3사4봉 종주중에 제 3봉













자연이 만든 색상에

그저

감탄 * 감탄이다








정상쪽도 한번 바라보고








관음봉 정자에서 간식을 먹고 진행을 한다













향적봉 능선이 부드럽게 오후의 햇살을 머금는다













수정암릉













관음봉으로 오르는 산님들








겨울이면 하얀옷을 입어 더 멋진 부부송













이제는

내림도 있어 덜 힘들어

조금의 여유로움으로 조망을 한다








마지막 3사 동학사도 당겨보고


















자연성능이 더 멋지게 보인다













힘들게 올라야 하는 저 봉우리








꽃잎 다 진 까치고들빼기의 신기한 씨방








있는 힘 다해 오른다


















저 삼불봉만 오르면 힘든 오르막은 끝난다













마지막 오름의 계단













계룡산 3사4봉 종주중에 마지막 제 4봉













이른 아침에 걸었던 장군봉 능선








남매탑으로 내려간다























얼마남지 않았다

동학사로~








이 코스에도 단풍이 절정이다











































산길을 끝내고 동학사로 가서 마지막 발도장을 찍는다



















계룡산 3사4봉 종주중에 마지막인 제 3사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계룡산(鷄龍山)에 있는 절

동계사(東鷄寺)라고도 하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724년(성덕왕 23) 상원(上願)이 암자를 지었던 곳에 회의(懷義)가 절을 창건하여 청량사(淸凉寺)라 하였고

 920년(태조 3) 도선(道詵)이 중창한 뒤 태조의 원당(願堂)이 되었다


936년 신라가 망하자 대승관(大丞官) 유거달(柳車達)이

 이 절에 와서 신라의 시조와 충신 박제상(朴堤上)의 초혼제(招魂祭)를 지내기 위해

 동학사(東鶴祠)를 지었으며

사찰을 확장한 뒤 절 이름도 동학사(東鶴寺)로 바꾸었다


이 절의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으므로 동학사(東鶴寺)라 하였다는 설과

 고려의 충신이자 동방이학(東方理學)의 조종(祖宗)인 정몽주(鄭夢周)를

 이 절에 제향하였으므로

동학사(東學寺)라 하였다는 설이 함께 전해진다


1394년(태조 3) 고려의 유신(遺臣) 길재(吉再)가 동학사의 승려 운선(雲禪)과 함께

 단(壇)을 쌓아서 고려 태조를 비롯한 충정왕·공민왕의 초혼제와 정몽주의 제사를 지냈으며


 1399년(정종 1) 고려 유신 유방택(柳芳澤)이 이 절에 와서

정몽주·이색(李穡)·길재 등의 초혼제를 지냈으며

다음해 이정한(李貞翰)이 공주목사로 와서

 단의 이름을 삼은단(三隱壇)이라 하고, 또 전각을 지어 삼은각(三隱閣)이라 하였다


1457년(세조 3) 김시습(金時習)이 조상치(曺尙治)·이축(李蓄)·조려(趙旅) 등과 더불어 삼은단 옆에 단을 쌓아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내고 이어서 단종의 제단을 증설하였고


다음 해에 세조가 동학사에 와서 제단을 살핀 뒤 단종을 비롯하여

정순왕후(定順王后)·안평대군(安平大君)·금성대군(錦城大君)·김종서(金宗瑞)·황보인(皇甫仁)·정분(鄭奔) 등과

사육신, 그리고 세조 찬위(簒位: 임금의 자리를 빼앗음)로 원통하게 죽은

 280여 명의 성명을 비단에 써서 주며

초혼제를 지내게 한 뒤 초혼각(招魂閣)을 짓게 하였다


인신(印信: 도장)과 토지 등을 하사하였으며

 동학사라고 사액하고 승려와 유생이 함께 제사를 받들도록 하였으며


1728년(영조 4) 신천영(申天永)의 난으로 이 절과 초혼각이 모두 불타 없어졌고

 1785년(정조 9) 정후겸(鄭厚謙)이 위토(位土: 묘에서 지내는 제사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경작하던 논밭)를 팔아버리자 제사가 중단되기도 하였다


1814년(순조 14) 월인(月印)이 예조에 상소하여 10여 칸의 사옥과 혼록봉장각(魂錄奉藏閣)을 세웠으며

 1827년 홍희익(洪羲翼)이 인신을 봉안하는 집을 따로 지었고

 충청좌도어사 유석(柳奭)이 300냥을 내고

 정하영(鄭河永)이 제답(祭畓)을 시주하여 다시 제사를 베풀었다


1864년(고종 1) 봄에 금강산에 있던

만화 보선(普善)이 이 절에 와서 옛 건물을 모두 헐고

 건물 40칸과 초혼각 2칸을 지었는데

 초혼각은 1904년 숙모전(肅慕殿)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 뒤 만화에게서 불교경론을 배운 경허(鏡虛, 1849∼1912)가 9년간의 수학을 마치고

  1871년(고종 8) 동학사에서 강의를 열었고

 1879년에는 이곳에서 큰 깨달음을 얻어 한국의 선풍을 드날렸다

 

6·25전쟁 때 옛 건물이 모두 불타 없어졌다가 1960년 이후 서서히 중건되었으며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삼성각·동림당·조사전·숙모전·육화당·염화실·강설전·화경헌·범종각·실상선원·동학강원(東鶴講院) 등이 있다


 이 중 동학강원은 운문사의 강원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구니 강원으로 손꼽히며

산내 암자로는 관음암·길상암·문수암·미타암·귀명암·상원암 등이 있다


이 절이 소유하고 있는 중요 문화재로는

 삼성각(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7호)과 삼층석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8호)이 있다

 

















동학사 삼층석탑(東鶴寺 三層石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8호


**

 

동학사내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으로

 ‘청량사(남매탑이 있는 곳)’라는 암자에서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1층 기단(基壇)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인데

탑신부의 3층 몸돌은 없어진 상태이다


 기단의 맨 윗돌은 탑신의 지붕돌과 같이 윗면에 비스듬한 경사를 두었고

 탑신의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으며

 적당한 경사가 흐르는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을 새겨 놓았다

규모가 작은 탑으로

통일신라 선덕왕 23년(723) 동학사를 처음 지을 때 함께 세워두었다 하나

탑의 양식이나 다듬은 솜씨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천천히


가을로 물든 계룡산의 이쁜풍경을

보면서


어두워지기전에

내려가야지하는 생각으로

걸었는데

완주에 성공했다


힘은 들었지만

긴 시간동안

자연과 함께 할 수 있었음이 좋았고


다양한 가을색을 맘껏 담을 수 있어서

좋았던

계룡산 3사4봉 종주


이쁘게 꽃피는 봄에

다시 도전의 꿈을 꾸면서


하루의 값진 선물 그 시간들에

미소를 지어본다



     수고 많았다...**



2018.   10.   24(수)



 

애상/이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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