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
사적 제505호.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의 본사이다
〈사적기 事蹟記〉에 의하면 544년(진흥왕 5) 인도승 연기조사가 창건했다고 하나
〈동국여지승람〉에는 시대가 분명하지 않으나 연기라는 승려가 건립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구례속지 求禮續誌〉에 의하면 543년 연기조사가 세운 절로
백제 법왕이 3,000명의 승려를 머물게 했으며 642년(선덕여왕 11)에 자장율사가 건물을 중수했다고 하는데
신라승이 백제지역에 있는 절을 중건했다는 사실은 의심스럽다
한편 〈봉성지 鳳城誌〉에는 670년(문무왕 10) 의상법사가 왕명을 받아
3층의 장륙전을 건립하고 사방 벽에 〈화엄경〉을 새긴 석경으로 장엄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원본사십화엄경 貞元本四十華嚴經〉은 797년(원성왕 13)에 번역되었기 때문에
장륙전이 건립될 당시에 석경이 만들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와 같이 화엄사의 창건이나 창건주, 중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1979년 황룡사지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의 발문에 의하면
754년(경덕왕 13) 황룡사 연기조사의 발원으로 화엄사를 건립하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성했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이 절의 창건연대와 창건주가 분명하게 밝혀졌으며 절의 이름은 〈화엄경〉에서 2자를 따온 것이다
그뒤 신라말 이곳에서 출가한 도선국사(道詵國師)에 의해 크게 중수되었다
고려 광종대에는 홍경선사가 당우와 암자를 중축했으며
문종대에는 곡물을 저장하기 위한 사고 2채를 일주문 밖에 건립했다
인종대에는 정인왕사가 중수했으며, 충숙왕대에는 조형왕사가 대대적으로 보수했
1424년(세종 6) 선종대본산으로 승격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고
이때 장륙전의 벽을 장식했던 석경도 파손되어 지금은 각황전과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각각 소장되어 있다
1630년(인조 8) 벽암대사가 중건하기 시작하여 7년 만인 1636년 대웅전과 요사채 등이 완공되었다
1702년(숙종 28) 벽암선사의 제자였던 성능이 장륙전을 중건하고
다음해에 삼존불과 보살상 4구를 완성하고는 경찬대법회를 열었는데
이때 숙종이 각황전이라 사액하고 화엄사를 선교양종대가람이라 했다
가람배치는 대웅전과 누문을 잇는 중심축과 각황전과 석등을 연결하는 동서축이 서로 직각을 이루고 있으며
대웅전 앞에는 동서5층석탑이 비대칭으로 서 있는 독특한 형식이다
이 절은 화엄종의 중심사찰로 많은 고승들이 머물면서 화엄사상을 펼쳐나간 곳이기도 하다
현재 경내에는 17세기 이후의 건물만 남아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각황전(국보 제67호)을 비롯하여 대웅전(보물 제299호)·영산전·나한전·원통전
명부전·적조당·노전으로 사용되는 삼전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각황전앞석등(국보 제12호), 4사자3층석탑(국보 제35호), 동5층석탑(보물 제132호)
서5층석탑(보물 제133호), 석경, 원통전 앞 사자탑(보물 제300호), 노주 등이 있다
이밖에도 선조가 벽암선사에게 하사한 교지 1매, 예조사격 1매, 예조홍각대사첩 1매
겸팔도총섭첩 1매, 예조대선사각성첩 1매, 인조하사 어석 1건 및 가사 1령, 어작 1대, 선조 어필각본 1권
선조하사 서산대사 발우 1좌 및 향합 1건, 각황전중건상량문 1매 등이 있다
지리산 화대종주 할때나
화엄사쪽에서 산행을 할때나
경내엔 들어 가 보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 갔었던 화엄사
이번에는 산행이 아닌 지인따라
그 절을 가게 되다
차로 이동하면서 잠깐 내려서 일주문을 담는다
화엄사 앞에 도착하여
지난날 산행을 하기 위해 봤던 낯설지 않는
초입 이정목을 담는다
힘들게 산행을 하였던 그 시간들~~
지금은 뿌듯한 추억으로 남아 미소짓게 한다
화대종주....
하라고 하면 이제는 못할 것 같으다
너무 힘들게 완주를 했기에.....
처음 들어 가 본다
불견
남의 잘못을 보려 힘쓰지 말고
남이 행하고 행하지 않음을 보려 하지 말라
항상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옳고 그름을 살펴야 한다
불문
산위의 큰 바위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비방과 칭찬의 소리에도 평정을 잃지 않는다
불언
나쁜 말을 하지 말라
험한 말은 필경에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
악담은 돌고 돌아 고통을 몰고 끝내는 나에게 되돌아오니
항상 옳은 말을 익혀야 한다
법구경의 3불을 의미하는 아기동자상
세개의 글에
나 자신을 뒤돌아 보게한다
성보박물관 관람은 다음 기회에....
들어 갈수록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랍고도 놀랍다
지인이 일 보는 사이
천천히 여유롭게 둘러본다
보제루(普齊樓)
정면 7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건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9호
본래 법요식(法要式) 때 승려나 신도들의 집회를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로서
대웅전 앞 한 단 낮은 터에 위치하고 있다
대웅전 쪽은 지면 위에 막돌초석을 놓아 바로 기둥을 세웠으나
반대쪽에서는 한 단 낮은 터에 막돌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워 누정(樓亭) 모양으로 꾸몄다
기둥은 민흘림이며 바닥은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다
대웅전 쪽 창문은 7칸 모두 큰 두쪽의 빗살문을 달고
반대쪽 5칸은 판문으로 대치하였으며 좌우 양칸은 문을 생략하였다
공포(?包)의 양식은 초익공(初翼工) 양식이다
이 건물의 건립시기는 1800년 이후라 생각된다
보제루 실내
대웅전
보물 제299호. 〈사적기〉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6년 벽암대사가 중건했다고 한다
앞면 5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높은 석단 위에 남향으로 세워졌다
기둥은 배흘림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했으며
기둥 위와 사이에는 공포가 짜여져 있는 다포계 형식이다
공포는 내외3출목으로 외부에는 쇠서(牛舌) 끝이 잘려 단순한 형태로 되어 있고
내부의 살미첨차[山彌檐遮]는 초화형으로 장식되는 등
조선 중기 목조건축의 특징을 보여준다
앞면에는 정자무늬와 빗살무늬로 된 삼분합이 달려 있으며
그 위에는 교창을 두어 건물이 높은 편이다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천장은 우물천장으로 외둘레간보다 한층 높게 만들었다
불단 뒷면과 좌우에는 각각2,3개의 고주를 세워 대들보를 받치게 했으며
1757년(영조33)에 제작된 후불탱화가 있다
이 불상 위로는 각각J자 형의 처마로 된 정교하고 장식적인 닫집이 있다
연꽃모양 돌장식
이 연꽃모양 돌위에서 대웅전을 바라보면
불상이 보인다고 한다
겨울이라 대웅전 정문을 완전 개방하지 않아 확인 할 수가 없음을~~
각황전(조선 후기)
국보 제67호,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국보(1962.12.20 지정). 원래 의상법사가 670년에 건립한 3층 장륙전으로
장륙존상(丈六尊像)을 봉안했으며 사방 벽은 화엄석경으로 장엄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99~1702년에 성능대사가 중건했으며
1930년대에 일본인에 의해 중수되었는데 이때 건물의 일부가 약간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앞면7칸,옆면5칸의 중층 팔작지붕 건물로 높은 석조 기단위에 서향으로 세워졌다
기둥은 평주이며 기둥머리 위에 창방과 평방이 놓여 있다
평방위와 기둥사이에 공포를 짜올리 다포계(多包系)이며
상하층 모두 내외2출목으로 되어있다
첨차는 아랫면이 둥글게 처리 되었고 쇠서의 끝이 모두 위로 올라가 활처럼 생겼는데
이러한 특징은 조선 초기 목조건축에서 많이 볼 수 있다
1층 앞면에는 빗살무늬와 솟을살무늬로 장식된 살문을 달고
옆면과 뒷면은 일부만 벽으로 막았다. 2층은 사방에 모두 작은 창을 달았다
내부는 통층으로 공간이 넓으며 고주를 사방에 배치하고
그 위에 대들보로 종량(宗樑)의 한쪽 끝을 받치고 있다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그 주위에 경사진 빗반자가 있는 점이 특이하다
중앙의 뒤쪽으로는 대불단 위에 석가불·아미타불·다보불(多寶佛)이 있고
그 좌우에 보현보살·문수보살·관음보살·지적보살(知積菩薩)이 있다
이 불상·보살상들은 3m가 넘는 거대한 불상으로
도금불사 때 발견된 복장기(腹藏記)에 의해
1703년(숙종 29)에 조성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불단 밑에는 임진왜란 때 파손 된
1,500여 점의 석경이 봉안되어 있다
적멸보궁으로 올라 가 본다
오르면서 본 각황전
각황전 주위 동백나무가 엄청 많다
지리산 능선이 보이고
연기암 가면서 알게 된 금전암
동백나무 군락지
화엄사에 오면 꼭 적멸보궁을 올라와야만이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
견성전
견성전 적멸보궁
다시 대웅전 앞으로 내려와서
구층암으로 간다
지리산 품안에 숨겨진 암자, 구례 화엄사 구층암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화엄사 대웅전 뒤로 난 산길을 따라
500여km를 걸어 올라가서
조릿대 숲을 지나면 넓은 마당이 펼쳐지고
건물 한 채와 석탑 한 기가 서 있다
승방 건물을 돌아 안마당으로 들어서면
천불보전과 수세전
그리고 또 다른 승방이 보인다
구층암은 본래 구층대(九層臺)였으며
1647년(인조 25년)에 중창 되었고
1902년에 중수가 있었으며
1937년 5월 19일 개수(改修)하였다
1998년 12월에 요사채 보수 중에
상량문에서 "구층대"라고 쓰여진 글이 발견되었다
옛날에 9층 석탑이 있어서
구층암이란 이름을 가졌을 것이라고 추측된다고 한다
구층암으로 가는 길목
잠깐 들어 가 본다
스님들의 수양공간인 선등선원
구층암이 보인다
원래 구층암은 스님들의 선방이었기 때문에
바깥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암자이었다고 한다
구층암
九層庵(구층암)' 편액
자연석을 쌓은 얕은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원주기둥과 모과나무 도랑주로 건물을 지었으며
팔작지붕의 겹처마에 정면 7칸, 측면 3칸 규모의 건물이다
구층암 요사채 앞의 석탑은 높이 약 3.5 m 로서
지대석 위에 이중기단을 한 삼층석탑이며
통일신라말 또는 고려 초인 10세기 무렵
조성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이다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렸으며
탑신 앞면에는 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현재의 석탑은 1961년
주변에 흩어져 있던 탑재를 모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승방
구층암의 주불전인 천불보전
정면 4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다포계 건물이다
석가모니불과 함께 현재 현겁에 나타나시는 1,000기의
소조부처님을 모신 전각이다
법당의 지붕 밑으로 눈을 돌리면 조금은 투박해 보이는
거북이와 토끼 조각상을 볼 수 있다
토끼와 거북이 설화처럼 토끼가 거북이 등을 타고
수궁으로 가는 모습이다
이 조각은 일종의 극락정토로 가는
'반야용선(般若龍船)'과 같은 의미인 '반야귀선(般若龜船)'으로
불국토로 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천불보전 앞에는 약 3m정도 되는 지방문화재 132호 석등과 배례석(拜禮石)이 있다
화엄사의 부속암자인 구층암에 놓여 있는 석등
등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세 받침돌로 구성된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8각의 아래받침돌은 각 면에 안상(眼像)을 조각하고
윗면에 연꽃무늬를 둘렀다
4각의 가운데 기둥은 길고 가늘어 보인다
윗받침돌은 8잎의 연꽃을 둘러 놓았고
밑면에 1단의 받침을 두었다
8각을 이루는 화사석은 4곳에 창을 마련해 놓았다
지붕돌은 여덟 처마가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각 귀퉁이가 위로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보이는 둥근 석재가 놓여있다
전체적으로 8각을 이루고 있고
안상과 연꽃장식 등의 각 부 양식과 수법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모과나무 기둥으로 유명한 구층암 본존요사
현재 다실로 쓰이고 있는 이 곳은
선방·강원·결사도량 등으로 쓰인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화엄사 주변의 야생차를 수확하고
차를 만드는 것으로도 유명한 구층암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선방을 지탱하고 있는
모과나무 기둥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암자를 찾는 일반인들에게 죽로야생차를
마실 수 있도록 '차 마시는 곳'을 마련해 놓았다
오래 된 듯한 동백나무
되돌아 나간다
지인이 일 볼 시간에 맞춰
화엄사랑 구층암을 쭉 둘러보고
가까운 곳에 있는 연기암으로 간다
(화엄사에서 4km 정도 이동)
지리산 자락의 해발 560m 에 위치한 연기암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연기암길 393에 있는 화엄사 말사로
섬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는 곳으로
백제 성왕 때 인도의 고승 연기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당시 전소되었던 것을 1989년 중창했다
연기암에는 높이 13m에 달하는 국내 최대 문수보살상이 있다
문수보살은 불교의 대승보살 가운데 하나로 삼국시대 이래 널리 전승되었다
연기암으로 오는 임도(3.2km정도)....
한적함과 숲속의 고요함이 함께 어우러져
도보로 왔으면 더 좋았을 길이었음을~~
특이하게도 라마교(티벳불교)의 상징인
마니차(윤장대)를 설치 해 놓았다
어떤 연유로 설치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부처님의 모든 경전을 원형 통 안에 넣어두고
경통을 돌리며 불경과 진언(옴마니반메흠)을 외우는
불교의 신앙 도구로
마니차를 한번 돌리면 경을 한권 보는 것과 같고
두 번 돌리면 죄업장이 소멸되고
세 번 돌리면 복덕을 얻고
번뇌가 끊어져 소원을 이루게 되고
백팔번 돌리면 다겁생의 죄업이 소멸되어
윤회를 벗어나게 된다고 한다
섬진강 물줄기 조망이 되는 곳이다
관음전으로 가 본다
단청 색을 입히지 않은
그대로의 소박함 이런게 참 좋다
기와랑 눈과의 조화가 너무 아름답다
연기암 대웅전인 대웅상적광전
높이 13m의 문수보살상
연기암을 뒤로하고
어느정도 걸어 보기로 한다
카페 흰구름 가는길
조금 내려오니
무박으로 화대종주할때
화엄사에서 시작하여 밤에 올랐던 이곳을 만나다
(그땐 어둠 속이라 주위 둘러 볼 여유도 없었던....)
이정표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엄청 힘들게 완주 했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가을에 꼭 다시 오고픈 연기암~~
지난날 진한 감동 안고 천은사로 간다
천은사
화엄사, 쌍계사와 더불어 지리산 3대 사찰 중에 하나인 천년 고찰이다
대웅전 대신 '극락전(極樂殿)'이 있으며
대웅전에 본전불로 석가모니불 대신 아미타불 부처를 모시는 사찰이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이란 극락 세계인 서방정토(西方淨土)에 있다는 부처로
모든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큰 원을 품었다 하여
이 부처를 염하면 죽어서 극락세계로 간다는 부처다
가장 성하였던 시절은 고려 충열왕이 천은사를 두고
‘남방 제일 선원(南方第一禪院)’으로 지정하였을 때였으나
임잰 왜란에 의하여 전소되면서부터 사세가 기울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것을 광해군 때 절의 주지 혜정 선사(惠淨禪師)와
단유(袒裕), 조유 선사(組裕禪師)가 절을 크게 중수하면서
절 이름을 '감로사'(甘露寺)'에서 '천은사(泉隱寺)'로 바꾸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일주문
수홍루
둘러 볼 것이 많은데
갈길이 멀어 대충 보고
다음에 와서 꼼꼼히 봐야겠다고 마음속에
저장하고 되돌아 나간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흘러내린 물이
천은지(泉隱池)란 호수를 이룬 곳이다
천은사를 뒤로하고 상생의 길 데크따라 걷는다
천은사는 성삼재로 올라가는 길에 위치한 매표소로 인해
문화재 관람료 때문에 탐방객들과 갈등이 많았는데
그 갈등이 2019년 4월 29일 폐지 되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천은사 주변에
상생의 의미를 담아 '상생의 길'을 조성하여
2020년 12월에 개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상생의 길은 3.3km로 나눔길, 보듬길, 누림길의 3개 구간으로 되어 있다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산속이 아닌 도로가 옆의 데크따라서
저수지 제방까지 걸어 본다
상생의 길도
다음엔 다 둘러 봐야겠다
방장산 천은사....
천은사 산문. 방장산은 지리산의 다른 이름이다
**
지리산 산행을 하게 되면
주위에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을
그냥 지나치기만 했을 뿐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다
산행도 좋지만 때론 이렇게 여유롭게
사찰여행을 하는 것도 참 좋은 것 같다
거대하고 웅장한 화엄사
야생차로 유명한 구층암
두발로 다시 걸어 보고픈 이쁜길의 연기암
봄과 가을에 꼭 다시 가 볼 곳이다~~
2022. 12. 1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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