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 둘레길 두번째 (운봉읍~매동마을)
* 일시 : 2012. 5. 19(토)
* 코스 : 운봉읍~서림공원~신기말~군화동~흥부골자연휴양림 ~월평말~인월~중근말~수성대~배너미재~장항말~매동말 (18.4Km)
퍼온것(푸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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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길
(지리산 둘레길 8백리)
지리산 둘레 8백리 길
곧장 오르지 않고 에둘러 가는 길
숲속 오솔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
마을과 사람을 만나는 길
들녘을 따라 삶을 배우고
강건너 물결에 일렁이는 바람을 따라
자기를 만나고 돌아오는 순례의 길
국내 첫 장거리 도보 트레일...지리산 길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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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는 동안 본 이쁜 꽃들 -♠
미나리냉이/해당화
샤스타데이지/백당나무꽃
선씀바귀/노랑씀바귀
고추나무꽃/붓꽃
큰꽃으아리/공조팝
애기수영/천남성/둥글레
덜꿩나무꽃/국수나무
불두화/작약
은대난초/금난초/은대난초
덜꿩나무꽃/찔레꽃
미나리아재비
찔레꽃/감자꽃
제 2구간 운봉~인월까지 (9.2Km)
악한 기운을 막는다는 돌장승인 진서대장군
방어대장군
갑오토비사적비지
운봉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비(碑)들을 모아 놓은것 중에서
유난히 큰 비(碑)를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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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리 '선두숲'으로도 불리우는 서림공원
전북에서 돌장승이 제일 많은 곳이 운봉지역이라고 함
예로부터 운봉은 온갖 세력들의 전략적 요충지였고
그만큼 부디침이 심한지역
그래서 돌장승을 세우고 마을의 평온을 비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고 함
운봉 들판은 황산쪽으로 람천이 흘러 나가 뻥뚫려 있는 모양으로
그 허한 기운을 보충하려고 한가운데
서림과 동림을 조성하고 장승을 세웠다고 함
현재 서림공원엔 부부 장승이 마주 서있고
공원에는 박봉양 공적을 기리는 박봉양공적비가 있다
농민군은 9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운봉 진입을 노렸으나 모두 실패하여 경상도 진출이 좌절 되었다고 함
이에
박봉양은 아전 출신으로 1894년 민보군을 조직하여 동학농민군이
운봉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았다고 함
신기마을
임진왜란이 휴전상태에 접어들어 왜적이 잠시 철수하고
영남이 안정을 찾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때
이곳에 터를 잡은 사람은 인동 장씨 장덕복이었다고 함
그가 보기에 이곳은 지리산이 바라 보이는 자리에 우뚝 솟아
마을을 보호하고 만복이 자손대대로 이어지는 천혜의 명당터로 보여
새 삶을 시작하는 터전이란 뜻으로
'새터(신기/新基)'라 이름 지었다고 함
소의 형국인 마을 북쪽 쇠잔등(고개)이 잘려나간 자리에
쇠한 기운을 막고자 마을 주민들이
직접 토성을 쌓았다고 함
람천
운봉을 지나 경호강을 만들고
남강으로 이어져 낙동강에서 맺음 한다는 천
송흥록생가와 황산 대첩비가 있는 곳
송흥록 : 동편제의 창시자
황산대첩비 : 고려말 이성계의 전공을 기념하는 비
비전마을
황산대첩비가 세워지고 이를 관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함
비(碑)가 전해져 내려온 마을
또는
비(碑)가 마을 입구에 있다해서 그러한 이름이 붙여진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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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조선말 동편제의 가왕(歌王)이라 일컫는 송흥록과 송만갑이 태어났고
명창 박초월이 성장한 동편제의 고향이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국악의 성지가 세워졌다고 함
국악의 성지
동편제 소리의 발상지이자 춘향가와 흥부가의 배경지인 것을 기념하고
판소리의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록을 시작으로
국악의보존.전승.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남원시가 설립하여
각종 국악 관련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함
동글동글 이 돌은 동편제 소리의 구성원리를 형상화한 조각이라고 함
가는 방향 좌측에 군화마을....
정리를 하다 보니 그 마을의 사진을 한장도 담지 않은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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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화마을
1961년 대홍수 때 소멸된 화수리 이재민들의 이주 가옥을
군인들이 지었다고 함
이주 후 마을 이름을 군인들이 지은 화수 마을이란 뜻인
군화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함
옥계호
흥부골자연휴양림
지리산과 연계 된 곳으로 덕두봉 자락에 위치
수경 55년생 내외의 잣나무 군락이 피톤치드를 내뿜어 삼림욕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
주변에는
이성계가 고려말 왜구 침입시 격적지인 피바위와 흥부전의
발상지 및 발복지가 있으며
광한루원 등 시내권 관광지가 형성되어 있다고 함
흥부골자연휴양림에서 우측으로 들어서니 싱그러운 녹음이 우거진 길로 이어진다
달오름마을(월평마을)
1800년대후반 부자였던 운봉박씨가 처음 터를 잡고
'새마을'이란 뜻의 신촌으로 불리다가
나중에 마을 모양이 반월형이라 하여
월평으로 불리웠다고 함
마을이 팔랑치를 마주 보고 있어 달이 뜨면 바로 보이는 언덕이란 뜻으로
달오름이라고 했다고 함
이 마을엔 벽에다 이쁘게 그림을 그려 놓았다
무엇을 담으시길래 저렇게 열공을....????
제 3구간 인월~금계 구간 시작점을 알리는
표시기 옆 구인월교를 건너서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점심을 먹은 후엔 저길을 따라서.....
귀여운 꼬마아가씨들도 둘레길에 흔적을 남기러....
고사리
점심을 먹은 후 다시 구인월교를 건너서
오늘은 여기서 매동마을까지 ( 9.2Km) 가기로....
중군마을
조선시대 전투병단이 전.중.후군으로 조직되었던바
임진왜란때 중군이 이곳에 주둔한 연유로
마을이름을 중군리 또는 중군동이라 불리어졌다고 함
황매암
출가해 50년째 선(禪) 수행중인 일장스님이 2004년에 창건하여
조용히 참선 정진하고 있는 암자
황매암이란 이름은
주변에 노란 매화가 많이 피어서 붙였다고 함
수성대
중군마을과 장항마을의 식수원인 곳
배넘이재
그 옛날 전설에는 운봉의 호수였으며
운봉에서 배가 넘나들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함
그리고
운봉 옆 주촌은 말 그대로 배마을이었다고 함
장항마을
1600년경 마을 뒤 덕두산 사찰에 수양하러 왔던
장성 이씨가 처음 정착했다고 함
이후 각 성씨가 들어와 마을이 형성
산세가 노루의 목과 같은 형국이라 하여 노루 장(獐)자를 써 장항이라 했다고 함
지금도 매년 당산제를 지낼 만큼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마을
웅장한 소나무
장항마을 사람들이 산신제를 지낸다는 윗당산
내려왔던 길을 뒤돌아 보니 참 이뿌다
매동마을
고려 말과 조선 초.중기에 걸쳐 네개의 성씨(서.김.박.오)일가들이 들어와 일군 씨족마을
매화꽃을 닮은 형국이라해서 붙여진 이름
차안에서 본 해넘이
**
한구간하고도 반을 더 걸어야 한다는 걱정 아닌 걱정을 안고서
1차 할때 함께 하지 못한 낯설음과 서먹함으로
차에 몸을 실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짙어진 잎새와
하얗게 피어있는 아카시아꽃들을 보면서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
날씨가 더울거라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바람도 살랑살랑 불고
약간 흐림으로 걷기엔 딱 좋은 날씨로
부드럽고 편안하고 조용한 길따라
많은 꽃들과 눈마춤하면서
걷는동
내 시야에 들어 온 모든것들에서의 감동으로
즐거움과 기쁨과 행복함을 가득 안은
그리고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음에 감사함을 안은 날이었다
**
걷다보니 힘든 것은 아니었는데 긴장을 한 탓인지
다리에 쥐가 났다
그래서
흥부골휴양림에서 얼릉 약을 두알 먹으니 좀 괜찮아졌는데
달오름마을에서 사진 찍고 일어나다 무릎에
무리가 갔는지 약간의 아픔이 왔다
.....
.....
에고
자만하지 말아야 했었는데...
그리고
배려심을 가져야 했었는데...
나자신의 짧은 생각과 부족함을
되돌아 보게 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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