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산속에 핀
너의 순수한 모습
'어젠 이랬노라'고
다정의 말
건네 주는
작은 너에게
반나절 기대였던 시간
참 행복 하였노라
우암사적공원(尤庵史蹟公園)
조선 후기 대유학자인 우암 송시열(1607~1689) 선생이 학문을 닦던 곳으로
1991년부터 1997년까지 1만 6천여 평에
장판각, 유물관, 서원 등의 건물을 재현해 1998년 4월 17일 사적공원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이곳은 선생이 말년에 제자를 가르치고 학문에 정진하던 남간정사
건축미가 뛰어난 기국정, 송시열 문집인 송자대전판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화재가 보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공원 곳곳이 잘 단장되어 있어 도심 속 시민들의 쉼터로도 제격이다
사적공원 안으로 들어서면
맨 먼저 왼쪽으로
대전시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어 있는 남간정사와 기국정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남간정사를 살펴보고 나와
좀 더 위쪽으로 올라가면 우암선생의 유물과 일생을 살펴볼 수 있는 유물관이 있고
유물관 앞 홍살문 사이로 멀리 명정문(明正門)이 보인다
조선시대 서원의 형태를 재현해 놓은 곳
서원 안으로 들어서면
우측에는 모든 괴로움을 참아야 한다는 뜻의 인함각(忍含閣)
좌측에는 모든 일을 명확하게 하고 마음을 맑게 하라는 뜻을 담은 명숙각(明淑閣)
정면에는 마음을 곧게 쓰라는 뜻의 강당인 이직당(以直堂)이 자리를 하고 있다
그 뒤로 매사 심사숙고하여 결정하라는 뜻의 심결재(審決齋)와
선현의 가르침을 굳게 지키라는 견뢰재(堅牢齋)가 있으며
가장 높은 곳에 새로 옮겨 지은 남간사가 자리잡고 있다
다시 명정문을 나와 우측으로 돌아가면 연못과 덕포루(德布樓)가 한 폭의 그림같이 펼쳐지고
덕포루와 더불어 고즈넉한 연못이 운치를 한층 더해준다
한편 사적공원 내에는 봄, 가을 우암 선생의 제향 봉행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이 땅에 유교사상을
꽃피운 우암 송시열 선생의 뜻을 기리고 보존하기 위해 조성된 우암사적공원
대학자 우암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남간정사(南澗精舍)
송시열 선생의 사후에 유림들이 목판을 새겨 송자대전을 펴냈던 장소이기도 하며
'송자'라는 칭호는
그의 학문적 업적이 얼마나 대단했는 지를 보여주는 증거
송자대전판은
선생의 문집과 연보 등을 집대성한 판목으로
현재 사적공원 내 장판각에 보관되어 있다고 함
남간(南澗 )이란
양지바른 곳(남쪽)에 졸졸 흐르는 산골물을 의미
이것은
선생이 평생 흠모하던 주자의 시
'운곡남간'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함
이직당(以直堂)
새롭게 조성된 건물로 '마음을 곧게 쓰는 집'이란 뜻으로
선생의 직(直) 사상을 담은 강당
인함각(忍含閣)
'모든 괴로움을 참고 또 참아야 한다는 뜻'의
선비들의 공부방
유물전시관
붉은 괭이밥
주목나무 열매
덕포루와 연못
오후 시간에 찾게 된 우암사적공원
계족산성까지 가기 위해
오늘은 대충 둘러 본뒤 여유로운 시간으로 다음에 찾을 것을 대신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은은한 향이 좋은 구절초
희미하게 남아있는 질현성
그 중에서도 뚜렷하게 남아 있는질현성
이 질현성을 만나기 위해 몇번을 왔다 갔다....
고들빼기꽃
'대청호반 산길따라'를 할때 걸었던 호반의 이쁜 길들은 아직도 물에 잠겨 있다
까실쑥부쟁이
여뀌
계족산성
언제였던가...??
이맘때쯤 이 길을 걸었을때 고마리가 엄청나게 피어
그 앙증스러움에 내 눈을 정신없이
빠져들게 하였는데
이번에는 여뀌와 꽃향유가 활짝 피어
내마음이..내눈이
감동으로
...
...
꽃향유
조금 욕심을 내어
무리하게 산행을 하여
발바닥이 아프고 다리도 엄청나게 무거웠지만
살랑살랑 부는 가을바람 안으면서
야생화들과 눈마춤 한 시간들은 그 힘들었던 것을 다 녹여 주었기에
어둠이 쫘악 깔릴때까지 걷고 또 걸었나 보다
2011. 10. 7(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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