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화엄사
사적 제505호.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의 본사이다
1979년 황룡사지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기록에
754년(경덕왕 13) 황룡사 연기조사의 발원으로 화엄사를 건립하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성했다고 되어 있다
1424년(세종 6) 선종대본산으로 승격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고
1702년(숙종 28) 중건했다
가람배치는 대웅전 앞에는 동서 5층석탑이 비대칭으로 서 있는 독특한 형식이다
이 절은 화엄종의 중심사찰로 많은 고승들이 머물면서 화엄사상을 펼쳐나간 곳이기도 하다
현재 경내에는 각황전(국보 제67호)을 비롯하여 대웅전(보물 제299호) 등의
17세기 건축물이 남아 있어 중요 문화제로 지정되었다
화대종주할때 시작점이라 낯설지 않은
22년 12월에 온 후 다시 들리게 되는 곳이다
오는길에 길가에 끝없이 주차 해 놓은 차들 이유는...??
현수막 내용에 화엄매가 2024. 1. 24일 결정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된 것 같다
지난번 왔을때보다는 오늘은 설긍설긍 둘러 보기로 한다
꽃샘추위가 보통은 아닌데
다들 열정이 대단 하시다
화엄사동5층석탑
보물 제132호. 높이 640cm
대웅전의 높은 석조 기단 밑에 2개의 석탑이 동·서로 서 있는데
양식과 조각수법이 다르고 서로 마주보며 대칭을 이루고 있지 않아
원래 쌍탑으로 건립된 것이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탑은 단층기단으로 표면에 아무런 장식도 없다는 것이
서탑과 가장 다른 점이다
지대석은 여러 매의 석재로 짜여 있고 그 위에 4매의 판석으로 된
하대석을 올려 놓았으며 하대석의 각 면에는 우주와 탱주가 조각되어 있다
기단 갑석은 4매의 판석으로 덮었는데 밑에는 부연이 있고
윗면은 약간 경사가 지면서 중앙에 1단의 각형 굄이 있다
탑신부의 옥개와 옥신은 각각 다른 돌로 이루어졌으며
옥신석에는 각 층마다 우주만 표현했다
특히 1층 옥신석은 높고 넓은 편이나 2층 옥신부터는
옥개석과 함께 급격하게 체감되었다
옥개석은 4단으로 낙수면이 편평하며 추녀 밑도 수평으로 되어 있다
상륜부에는 노반과 복발이 남아 있으나 높은 간주 위에 놓인 보주는
원래부터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으며 탑의 바로 앞 남쪽에는 배례석이 있다
이 석탑은 단층기단과 불안정한 체감비율, 간략화된 형태 등에 의해서
9세기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통일신라시대 석탑 가운데 보기 드문 5층석탑의 한 예로서 중요하다
화엄사서5층석탑
보물 제133호 높이 640cm
2중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이 놓여 있는데
기단과 탑신부 표면에 신장상이 조각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대석은 여러 매의 돌로 구성되었으며 하층기단의
하대석과 중석은 같은 돌로 되어 있다
하대석의 각 면에는 우주와 2개의 탱주를 새긴 다음 각기 방위에 따라
십이지상을 안상 안에 3구씩 조각했다
이와 같이 하층기단에 십이지상이 조각된 예는
원원사지동·서3층석탑이나 안동 임하동 3층석탑 등
통일신라 후기 석탑에서 가끔 볼 수 있다
하층갑석은 4매의 판석으로 윗면에는 호형과 각형의 굄이 있다
상층기단은 하층기단에 비해 높은 편으로 4매의 돌로 짜여 있으며
각 면에는 우주와 탱주를 모각하고 팔부중상을 2구씩 조각했다
상층갑석은 2매의 판석으로 되어 있으며 밑에는 부연이 있고
윗면 중앙에는 2단의 굄이 탑신을 받치고 있다
탑신부의 옥신과 옥개는 각각 다른 돌로 만들어졌으며
옥신석에는 우주만 새겨져 있는데 1층 옥신 4면에는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다
사천왕상은 신체가 장대하나 양감이 줄어들면서 갑옷의 띠주름이 굵어지는 등
통일신라 후기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준다
옥개석은 5단의 층급받침이며 낙수면이 완만하게 내려오다가
처마 끝부분에서 약간 반전되었고 추녀 밑은 수평으로 처리되었다
상륜부에는 동탑과 마찬가지로 노반·복발 위에 간주가 달린 보주가 있으나 후보된 것이다
석탑의 남쪽에는 배례석이 있는데 측면에 안상, 윗면에 연화가 조각되어 있다
이 석탑은 전체적으로 고준하면서도 비교적 알맞은 체감비율, 옥개석의 반전, 기단과 탑신에 장식된
조각상이 투박하면서 간략화된 것 등으로 보아 9세기경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
보물 제299호. 〈사적기〉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6년 벽암대사가 중건했다고 한다
앞면 5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높은 석단 위에 남향으로 세워졌다
기둥은 배흘림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했으며 기둥 위와 사이에는 공포가 짜여져 있는 다포계 형식이다
공포는 내외3출목으로 외부에는 쇠서[牛舌] 끝이 잘려 단순한 형태로 되어 있고
내부의 살미첨차[山彌檐遮]는 초화형으로 장식되는 등 조선 중기 목조건축의 특징을 보여준다
앞면에는 정자무늬와 빗살무늬로 된 삼분합이 달려 있으며
그 위에는 교창을 두어 건물이 높은 편이다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천장은 우물천장으로 외둘레간보다 한층 높게 만들었다
불단 뒷면과 좌우에는 각각 2, 3개의 고주를 세워 대들보를 받치게 했으며
불단 위에는 비로자나삼존불상이 안치되어 있고 1757년(영조 33)에 제작된 후불탱화가 있다
이 불상 위로는 각각 J자 형의 처마로 된 정교하고 장식적인 닫집이 있다
국가유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홍매이다
이제 눈뜨기 시작~
일주일 후에나 그 화려함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각황전
국보(1962.12.20 지정). 원래 의상법사가 670년에 건립한 3층 장륙전으로
장륙존상(丈六尊像)을 봉안했으며 사방 벽은 화엄석경으로 장엄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99~1702년에 성능대사가 중건했으며
1930년대에 일본인에 의해 중수되었는데 이때 건물의 일부가 약간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앞면 7칸, 옆면 5칸의 중층 팔작지붕 건물로 높은 석조 기단 위에 서향으로 세워졌다
기둥은 평주이며 기둥머리 위에 창방과 평방이 놓여 있다
평방 위와 기둥 사이에 공포를 짜올린 다포계(多包系)이며
상하층 모두 내외2출목으로 되어 있다
첨차는 아랫면이 둥글게 처리되었고 쇠서의 끝이 모두 위로 올라가 활처럼 생겼는데
이러한 특징은 조선 초기 목조건축에서 많이 볼 수 있다
1층 앞면에는 빗살무늬와 솟을살무늬로 장식된 살문을 달고
옆면과 뒷면은 일부만 벽으로 막았다
2층은 사방에 모두 작은 창을 달았다
내부는 통층으로 공간이 넓으며 고주를 사방에 배치하고
그 위에 대들보로 종량(宗樑)의 한쪽 끝을 받치고 있다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그 주위에 경사진 빗반자가 있는 점이 특이하다
중앙의 뒤쪽으로는 대불단 위에 석가불·아미타불·다보불(多寶佛)이 있고
그 좌우에 보현보살·문수보살·관음보살·지적보살(知積菩薩)이 있다
이 불상·보살상들은 3m가 넘는 거대한 불상으로 도금불사 때 발견된
복장기(腹藏記)에 의해 1703년(숙종 29)에 조성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불단 밑에는 임진왜란 때 파손된 1,500여 점의 석경이 봉안되어 있다
적멸보궁으로 오르면서 본 각황전
구례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
국보(1962.12.20 지정). 높이 550cm
〈사적기〉에 의하면 자장율사가 연기조사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일종의 불사리 공양탑이라고 한다
그러나 석탑의 양식으로 보아 조성연대가 7세기 중엽까지 올라간다고 볼 수 없다
이 석탑은 2층 기단에 3층의 탑신이 놓여 있으나 상층기단이 특이하게
사자상으로 되어 있어 이형석탑(異形石塔)에 속한다
지대석 위에는 3단의 높은 굄이 하층기단을 받치고 있으며
하대석의 각 면에는 우주를 조각하고 그 사이에 안상을 3구씩 배치했다
안상 안에는 천인상(天人像)을 조각했는데, 천의자락을 날리면서
연화대좌에 앉아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거나 공양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지물(持物)도 각기 다르다
상층기단에는 암수 2쌍의 사자를 네 모퉁이에 각각 배치하고
머리 위에 연화대를 얹어 탑신을 받치고 있으며
그 가운데에 합장하고 서 있는 승상(僧像)은 머리로 탑신을 받치지는 않았으나
그 위에 연화무늬를 조각하여 천개를 표현했다
석사자상은 연화대좌 위에 정면을 보고 앉아 있는데
입을 벌린 채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으며
각각 표정이 달라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또한 승상은 연기조사의 어머니인 비구니라고 하며
이 석탑 바로 앞에 있는 석등 아래쪽에 꿇어앉아 있는 승상은 효성이 지극한
연기조사가 불탑을 받들고 서 있는 어머니께 석등을 머리에 얹고
차공양을 올리는 모습이라고 한다
상층기단 갑석은 윗면에 약간 경사가 있으며 중앙에는 2단 굄이 있다
탑신부의 옥신과 옥개는 각각 다른 돌로 이루어졌는데
1층 옥신 4면에는 자물쇠가 장식된 문비를 새기고
그 좌우에는 인왕상·사천왕상·보살상이 조각되어 있다
2, 3층의 옥신에는 우주만 모각되어 있다
옥개석은 5단의 층급받침으로 낙수면이 평박하고
처마 끝부분에서 예리하게 반전되어 있어 경쾌한 느낌을 준다
옥개석의 각 층 윗면에는 2단의 굄을 두어 옥신석을 받치도록 했다
상륜부에는 노반·복발만 남아 있다
이 석탑은 알맞은 체감비율과 옥개석의 경쾌한 반전,
우주 대신 4마리의 사자를 사방에 배치한 점,
하층기단 및 1층 옥신의 뛰어난 조각수법 등에 의해
통일신라시대 전성기인 8세기 중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석탑형식은 고려시대의 사자빈신사지석탑(1022)을 비롯하여
홍천물걸리4사자석탑 등으로 이어졌으며 조선시대에도 제작되었다
화엄사를 뒤로하고 구층암으로 간다
구층암
구층암의 매력은 자연을 닮은 데 있다
무엇 하나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 없다
요사채의 모과나무 기둥은 단연 자연스러움의 으뜸이다
모과나무를 다듬지 않고 있는 그대로 가져다 썼다
천불의 부처가 모셔진 천불보전 앞에 단아한 석등과 배례석,모과나무가 있고
복원하지 못하고 듬성듬성 쌓아 놓은 신라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3층석탑마저 자연스럽게 보인다
지난번엔 연기암을 둘러보고
다시 화엄사로 나가서
임도따라 차로 연기암으로 이동하였지만
이번에는 가 보지 않은 길따라 연기암으로 간다
이 들매화는 화엄사에서 벗어나 있지만 유명하다
아직 피지 않은~~
계곡을 건너고
한적하고 고즈넉한 길~~
조용하니 참 좋다
그런 것 같다
어머니 품속같이 포근한 길~~
연기암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소재 화엄사 내에 있는
화엄사 원찰로서 백제 성왕 때 인도의 고승 연기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당시 전소되었던 것을 1989년 중창했다
연기암에는 높이 13m에 달하는 문수보살상이 있다
문수보살은 불교의 대승보살 가운데 하나로 삼국시대 이래 널리 전승되었다
섬진강이 보이고
천천히 둘러보고
햇빛바라기도하고
되돌아 나간다
올라왔던 길로 ~~
이끼가 귀엽게 피었다
동백나무잎에 내린 햇살이 반짝반짝 눈부시다
그리고
산수유마을까지 접수하러 간다
차안에서 보이는 노란 산수유랑 하얀능선이 참 멋지다
주차장에서 본~~
산수유도 아직은 만개가 아닌~~~
오는길에 남원 추어탕으로
저녁을 맛나게 먹다
**
함께 나눌 수 있고
같이 할 수 있는 지인들이 있어서
많은 위로가 되었던 날~
너무너무 고맙고 감사+감사
다들 수고 많으셨구요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합니다^^
2024. 3. 1(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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